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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론 / 기사모음

[기사모음] 경기일보-김종길의 길위의 미술


“이 터에서 천년만년 농사지어라!”

-황새울 ‘들지킴이’가 말하다

황새울 들녘의 들머리에 서 본 적이 있는가? 이제는 철조망에 묶인 채 가슴살이 다 드러나도록 갈아엎어진 그 붉은 농토를 가본 적이 있는가? 반세기 동안 농투성이로 땀 흘리며 갯벌을 옥토로 일궈낸 그 땅, 그 푸른 들이 생장을 멈췄다. 할배 할매가 천막 1동, 보리쌀 한 가마, 목재 두세 지개를 받고 강제 이주해 얻은 그 땅이 붙잡혔다. 1952년 이후, 다시 50년 만에 팽성읍 대추리는 강제이주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공공조형물<들지킴이>는 강제이주 결정 이듬해인 2004년에 마을사람들의 염원을 담아 황새울 들머리에 세워졌다.

작가 최평곤은 처음에 장승을 생각했다. 지킴이로 그만한 조형물이 있었던가. 그러나 키 작은 장승과 솟대로 350여 만 평의 들녘을 품기에는 너무나 초라했다. 그래서 그는 무엇보다 힘 있는 지킴이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전통의 맥락을 고수하며 큰 의미를 갖는 것이 무엇인가 고민하다 문무인상을 떠 올렸다. 이후, 온양 민속박물관의 민속자료를 살펴가며 형상의 구상과 의미를 재 맥락화 하는 작업에 골몰했다. 무인상 11m, 문인상 10m라는 거대한 대나무 수호신이 서게 된 것은 그런 연유다. 지조와 절개의 상징으로 우뚝 선 대나무 <들지킴이>는 그렇게 마을사람들의 곁에서 ‘풍파’를 견디며 막아내고 있다.

장승이 그러하듯 이 상(像)은 하나의 경계요, 이정표요, 신(神)이다. 그러나 괴엄(魁嚴)한 표정은 없고 오로지 숭엄(崇嚴)한 자태로 천지간에 서 있다. 신이 선 이래로 사람들은 저항의 고비마다 이곳에서 고사지내고, 불 밝히며, 액병(厄病)을 빈다. 천년만년 이 터에서 농사짓게 해 달라고 목청을 높인다. “지금 아무것도 갈아엎지 않고 내리 내리 깃들고 싶다”고 말한다. 공공미술은 이와 같다. 천박한 자본의 욕망 따위에 짓눌린 미술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생동하는 생생지리(生生之理:하늘이 인과 물을 끊임없이 낳은 이치)의 율동과 같다. 그리하여 미술은 제가 선 자리에서 끊임없이 메시지를 타전해 나가는 것이다. 백무산의 대추리 벽시 ‘풀씨처럼 우리가 가야할 땅’을 보라! “그곳은 우리가 가야 할 땅/사막에 내리는 소나기처럼/대지에 내리는 풀씨들처럼/우리 몸이 내려야 할 땅/언 땅을 적시는 봄비처럼/자갈땅에 내려앉는 민들레 꽃씨처럼/우리 몸이 가서 적셔야 할 땅/달려가 한 몸 되어야 할 땅”이라 하지 않는가.

[경기일보-김종길의 길위의 미술] 연재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