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침략의 상징 옛 알뜨르비행장 일대에 작품 설치돼
제주비엔날레 일환으로 옛 격납고 등 활용해 전시
 

 

최평곤의 ‘파랑새’와 구본주의 ‘갑오농민전쟁2’, 김해곤의 ‘한 알’이 알뜨르비행장을 무대로 설치돼 있다.
지난 4일 오후 가파도와 마라도가 내다보이는 제주 남서부 알뜨르의 농경지에는 농가들의 일손이 이어졌다. 한두방울 빗방울이 얼핏 보였지만, 그뿐이었다. 농경지 사이로 들어가자 흙먼지가 날릴 정도로 가물었다. 농사용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이아무개(67·여)씨는 “요즘 양배추를 심어야 하는데 너무 메말라 잘 자랄지 걱정이다.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는 있지만 얼마나 올지 모르겠다”며 들판을 바라보았다.

강문석의 ‘메이데이’
강문석의 ‘메이데이’
일제는 태평양전쟁 시기 한국인들을 강제동원해 거대한 군사기지를 건설했다. 알뜨르에는 알뜨르비행장과 격납고, 갱도진지 등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곳에 예술인들이 들어가 작품을 설치했다. 예술가들은 격납고와 벙커가 남아있는 아픔의 땅에 역사와 장소에 대한 성찰을 담은 작업을 설치했다. 지난 2일부터 시작한 제주비엔날레의 일환이다. 알뜨르는 제3코스다.

먼지 날리는 밭과 밭 경계 사이로 20여m 정도 걸어들어가면 당시 사용했던 격납고(정식 명칭 유개엄체)에에 부서진 제로센(일본 전투기) 모형의 작품이 보인다. 강문석의 작품 ‘메이데이’이다. 부러진 채 땅에 박힌 모습의 제로센 전투기를 형상화해 전쟁이 남긴 폐허의 모습을 환기시켰다. 인근 밭 사이의 격납고에는 자그마한 돌덩이가 끼워진 철망이 쳐져있다. 격납고 안에는 조그마한 꽃밭을 조하고, 파란색 의자를 설치했다. 철망 밖에는 농민들이 바쁘게 손길을 놀리고 있다. 전종철의 ‘경계선 사이에서’라는 이 작품은 바람이 지나가는 철망 사이에 역사의 흔적들을 끼워넣어 역사의 편린들을 보여주고, 평화와 생명, 평화와 전쟁의 경계선을 철망 구조물로 표현했다.

전종철의 ‘경계선 사이에서’
전종철의 ‘경계선 사이에서’
또다른 격납고에 설치된 옥정호의 ‘진지’에는 가족여행을 온 가족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진지를 국방색이 아닌 무지개색으로 바꿔 ‘평화의 제스처’를 보여주고 있다. 섯알오름 추모비 들머리 주차장에는 9m에 이르는 최평곤의 작품 ‘파랑새’가 설치돼 있다. 대나무로 만든 이 작품은 대나무를 씨줄 날줄로 엮어 평화의 메시지를 전한다.

옥정호의 ‘진지’
옥정호의 ‘진지’
그 옆에는 37살로 요절한 조각가 고 구본주의 작품 ‘갑오농민전쟁2’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깃발과 천을 활용한 환경미술 작품활동을 벌여온 김해곤의 황금색 천으로 이뤄진 작품 ‘한 알’은 밀 한 알의 탄생을 형상화 해 전쟁의 역사가 치유되고 평화의 시작을 알리는 메시지를 전한다. 산방산과 농경지, 격납고와 어울린다. 이바아이우의 작품 ‘커뮤니키 퍼니처’는 마을주민들과 관광객이 햇빛을 피해 쉴 수 있는 휴식공간의 기능과 소규모 작물을 재배, 수확, 저장할 수 있는 기능을 갖췄다.

제주비엔날레는 오는 12월3일까지 이어진다. 이들 작품 가운데 일부는 비에날레가 끝나도 유지된다. 알뜨르비행장 일대는 제주올레 10코스가 지나간다.

글·사진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