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일어섬의 민중의지
최평곤의 대나무 인간, 그 조형성과 환경미학
인간이 자신의 형상(image)을 마음속에 그려보는 것이 곧 자신에 대한 ‘심상(心像. idea)’을 외부세계에 표출해 보는 것이다.
- 허버트 리드(Herbert Read)
1994년, 최평곤은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맞아 공주 우금치에 첫 대나무 인간을 설치한다. 충남민미협 주최의 설치미술전으로 치러진 기념전은 농민 혁명군의 마지막 격전지이자 최후의 보루였던 ‘우금치’라는 역사적 공간(패전의 죽음공간)을 살림의 공간으로 되살려 내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당시 최평곤은 그러한 역사성과 공간성을 어떻게 작품으로 구현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생각에 골몰했던 그는 작업실 주변의 대나무밭을 보고 농민 혁명군의 죽창을 떠 올렸다. 그래서 그는 대나무를 쪼개어 씨줄 날줄을 엮어 형상(形象)을 만들었다. 그것이 6미터 50센티에 이르는 거대한 대나무 인간이었다.
어떠한 영감이 그를 지배했는지에 대해선 좀 더 깊이 있게 탐구해야 하나 공간과 역사에 대한 사유의 집결체로서 등장한 이 대나무 인간은 분명 새로운 민중의 역사를 꿈꾸었던 동학에 뿌리를 두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전시가 열리던 날 공주농민회에서 고사를 지내고 횃불 행사를 준비했는데 이 작품은 단연 돋보였다.
횃불의 공동체적 생명에너지로 되살아난 이 대나무 인간의 ‘거대한 일어섬’은 100년의 시차를 뛰어넘어 다시 민중의 역사로 새 시대를 열어야 함을 항변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진다. 이러한 궁금증은 작가자신에게 보다 분명한 조각적 과제가 되었던 것으로 판단되는데, 사실 그동안 조각 작업과는 거리가 있었던 그의 작품들은 이후 선회하여 ‘과제’에 대한 적극적 행동으로 거대한 일어섬의 대나무 인간을 제작하고 세우는데 바쳐진다.
대나무 인간 ; 그 몸의 언어와 공간성, 시간성, 형상성의 의미
최평곤은 우금치 설치작 이후 첫 개인전을 준비했다. 조각 작업을 해오지 않았던 작가에겐 무모하리만큼 엄청난 프로젝트였다. 6미터에서 12미터에 이르는 대나무인간 19점을 왜목마을 포구의 갯벌에 설치하는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그는 첫 전시를 위한 시간성과 공간성의 의미를 조각 작업과 재맥락화 하는 개념 합일을 꾀한다. 무엇보다 우금치 대나무 인간의 우연적 출현이 갖는 애매함을 해소하면서 당당하게 그들 스스로 생명을 얻으며 세상에 출현하도록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태도는 조각가의 창조주 환상에서 벗어나 ‘생명의 모심’으로 형상성을 받아들이는 낮은 자세의 표현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메시아에 대한 인간의 소망과 신실함, 그 진리에의 목마름이 ‘몸’의 언어로 표현될 때의 형상성과 다르지 않다. 이 프로젝트의 세 개의 축인 장소적 공간성, 시간성, 형상성은 그가 꾸준히 발표하게 될 대나무 인간에 대한 미래적 모델의 큰 개념이 되었다. 세 개의 개념에 대한 풀이를 시도해 보자.
먼저 장소적 공간성으로 선택한 ‘왜목’은 그가 태어나고 자란 당진의 갯벌 포구이다. 박정희 정권부터 시작된 서해안 간척사업은 현재 부안의 새만금 사업까지 이어지고 있는 생태환경 파괴의 주범이다. 그런 면에서 왜목의 생태적 가치는 분명 작가에게 삶의 터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게 한다. 또한 왜목은 해가 뜨고 지는 독특한 형국을 보여 주는데, 해와 달의 동시적 교차 공간으로서 생명잉태를 위한 지형적 개념은 충분하다. 그리고 들숨 날숨이 반복하는 밀물과 썰물의 큰 차이는 광활한 갯벌공간의 사라짐과 나타남을 통해 대나무 인간의 출현을 드라마틱하게 전개시킨다. 이러한 공간적 상황이야말로 작가에겐 거의 완벽한 의미부여가 되었을 것이다. 이후 ‘건너간다’展(성곡미술관. 2001), 자연미술비엔날레(공주 공산성. 2002), 부산비엔날레 바다미술제(해운대. 2002), ‘분단의 벽을 넘어서’展(서울시립미술관. 2003), 자연미술비엔날레(공주 장군봉. 2004), 공공연한프로젝트(동대구역. 2004) 등의 장소와 공간에 대나무 인간을 세웠다.
작품의 전시기간을 보면 1999년 12월 31일부터 이듬해 대보름까지 설정하고 있다. 한 세기, 아니 천년의 주기가 바뀌는 때임을 알 수 있다. 새 천년 맞이(陽의 확산)와 대보름(陰의 확산)의 시간성은 밝음과 어둠이라는 양음의 양면성이 아닌 그것의 회오리로서 태극(太極)의 기운을 상징한다. 시간이 일직선상의 직선적 흐름(運動)이 아닌 역동(逆動)에 의한 순환체계는 동학의 이치가 그 때 그 시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느 때고 되살아 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대나무 인간의 출현은 바로 그러한 시간성의 중심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13년 가까이 제작해 온 대나무 인간은 6미터 이상의 높이와 2미터에 이르는 몸통을 가진다. 제작 상 기술적 부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만, 대부분의 작품들은 긴 원통형의 몸에(다리는 하나의 몸통으로 붙어서 동세의 큰 흐름만 보여준다.) 팔과 계란형의 머리로 이뤄져 있다. 서 있는 형상에 맞게 대나무를 길게 이어붙인 다음 몸통을 옭아매듯 지그재그로 묶어 놓은 모습이다. 두 손을 가지런히 옆구리에 붙이거나 기도하듯 모은 형국은 인물의 상황이 여전히 ‘깨어남’의 순간에 있음을 보여준다.
미륵의 현신 ; 왜목의 해맞이와 월인천강지곡의 꿈
왜목에 설치된 19인의 대나무 인간은 멀리 바다로부터 갯벌을 건너오는 모습이다. 장대한 스케일이 만들어 내는 설치풍경은 보는 이로 하여금 타전소리의 울림을 훨씬 크게 한다. 수백 미터에 이르는 보폭의 일렬종대는 ‘바다로부터’의 그 간극을 메우는 ‘틈’의 소리이자 ‘지속가능한 개발’논리에 파묻혀 수없이 사라져간 생태적 환경으로서의 갯벌 복원에 대한 단호한 행동양태이다. 바닷물이 들어오면 그 인간들은 물의 깊이에 따라 ‘출현’을 반복하는 모양새를 취하는데, 기존의 ‘물질성’을 드러낸 조각적 재료와 달리 대나무 쪼가리를 엮어 만든 텅 빈 물질성과 그물망은 존재의 투영(投影)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물이 몸의 중심으로 들어왔다 사라지고, 바람이 흐르며, 하늘의 푸름과 밤의 어둠이 유영하듯 깃드는 모습에서 보다 확실한 근거를 읽는다. 뿐만 아니라 대보름맞이 횃불 놀이에서 작품 중 하나가 불의 산화로 어스름 저녁의 땅거미를 혼란시키는 행위는 어둠의 거부가 아니라 드디어 민중의 씨앗으로 불꽃이 되었음을 증거하고 있다.
‘바다’로부터의 몸짓은 공주 자연미술비엔날레(2002)에서 ‘숲’으로 바뀌고, 국립극장은 ‘강’, 성곡미술관은 리얼리즘미술의 ‘현장’, 서울시립미술관은 ‘분단’이 된다. 자연에서 삶의 현장으로, 나아가 이 땅 민중의 큰 열망인 분단으로 확장된 그의 주제는 거대한 인간의 꿈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최근 그의 프로젝트는 DMZ공간이다. 남쪽과 북쪽을 이어주는 가교로서 인간의 군상을 설치하고자 하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그의 대나무 인간들이 보여주는 ‘거대한 일어섬’에 대한 상징의 궁금증을 확인할 필요가 있으리라. 곳곳에 세워지고 있는 이 인간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처음으로 돌아가 최평곤이 첫 작품을 하게 된 계기를 살펴보자. 그는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이라는 시간과 공주 우금치라는 공간, 그리고 인간의 형상을 하나의 의미로 묶는다. 이 세 개의 의미는 함축적으로 동학이 성취하지 못했던 새 날 새 천지의 개벽을 다시 살려내는 것이다. 완전한 패배로 동학이 죽음을 맞이했던 우금치에서 그 시발의 울음을 터트린 셈이다. 응어리진 울음의 깨우침은 20세기 내내 식민과 전쟁, 독재와 개발에 시달려야 했던 민중의 억눌림이었으리라. 그리하여 다시 그 염원의 깃발을 세우고 당당히 주인으로 나서야 함을 부르짖었던 것이리라. 결국 그는 견고한 중량으로 누워있는 운주사의 와불(臥佛)이 아닌 존재의 투영으로서 ‘미륵’을 일으켜 세우기에 이른 것이다. 죽임의 무기로서 죽창이 아닌 상처의 치유와 피의 성스런 부활로 미륵의 현신을 꿈꾼 것이다.
미륵신앙의 본령은 재림의 기다림이 아닌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 부처에 대한 깨우침이다. 마음 부처는 대저 민중의 몸에 깃들어 있다. 그러므로 미륵의 현신이라 함은 수 억년 뒤에 올 미지의 누군가가 아닌 바로 지금 내 안의 부처를 깨우치는 것이리라. 최평곤의 대나무 인간은 그 모든 깨우침의 거처로서 민중의 심장이며, 대나무의 강인한 수맥으로 흐르는 생명의 씨앗이다.
[공간지 2005년 5월호_환경미술]
미술평론가 김종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