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7-31 21:22:15
분단은 한국 사회의 일상을 직조해내는 거대한 구조이자 그러한 일상이 재구축해내는 유동하는 질서이다. 한국 사회는 한반도 남단에만 존립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이라는 사회는 여전히 분단 이전의 한반도 전체가 단일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는 가설 위에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의 일상 깊이 스며들어 있는 가상의 코리아는 현실을 지배하는 강력한 기제이다. 분단체제는 한국 사회에 불구의 마음을 심어두었다. 그것은 대립과 갈등을 먹고사는 냉전체제를 공고히 하는 밑거름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스스로 생장하는 내면화한 정신적 구조 그 자체였다. 분단의 시대를 살아온 예술가들에게 분단체제를 인식하고 그것을 예술작품 속에 담는다는 것 자체가 금기인 시대가 있었다. 한국의 예술가들은 1980년대 이전까지 30여년간 철저히 분단문제에 침묵했다. 민주화시대 이후 동시대 예술가들에게서 나타나는 후기적 현상은 분단을 넘어 통일을 이야기하는 탈분단미술이다. 월북자 아들이라는 연좌제 시각의 고통 속에서 성장한 이반은 1980년대를 지나면서 비무장지대 예술문화운동을 통해 분단 극복의 예술을 펼쳤다. 임진각에 자리 잡은 최평곤의 대나무 인간 ‘통일 부르기’는 통일을 염원하는 공공미술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졌다. 윤수연의 다큐사진 연작들은 분단체제의 후기적 현상인 새터민들의 남한 생활을 추적한 르포르타주다.
비무장지대예술문화운동을 집약한 이반의 ‘도라산역 벽화’ 이미지
▲ 이반, 비무장지대예술운동
분단체제 속 인간 실존과 예술가
이반은 월북자의 아들이다. 그는 분단체제가 그에게 부여한 불안의 실존적 의미를 체감하면서 성장했고, 예술가로서도 그 상처를 고스란히 안고 살아야 했다. 직간접적으로 그를 억압한 연좌제는 냉전의 시대를 지내온 이반에게 커다란 장애였다.
1977년 ‘팽창력-비무장지대’로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는데, 당시 작품 제목에 ‘비무장지대’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조언에 따라 공모전에는 그 단어를 빼고 출품했을 정도로 뿌리 깊은 냉전체제를 관통하면서 분단과 통일을 이야기하는 예술가로 살아왔다.
이 작품은 회화적 질감과 격렬한 행위의 흔적이 만들어낸 긴장감이 넘쳐흐르는 단색 평면회화다. 커다란 화면 곳곳에 구멍이 뻥뻥 뚫려 있는 단색화 계열의 작품이다. 그는 커다란 캔버스 곳곳에 무수히 송곳으로 구멍을 뚫고 그것을 물감으로 메운 후 다시 구멍을 뚫고 메우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분단체제의 고통과 상처를 표현했다. 그것은 ‘형상표현의 절제’라는 당시 화단 분위기를 반영한 단색화이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그의 작품이 여느 단색화들과 다른 것은 전후세대의 내면화한 상처를 표현한 실존적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는 1987년부터 비무장지대 예술문화운동을 펼쳤다. 비무장지대는 분단 상황을 대변하는 상징인 동시에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생태의 보고이다. 이반은 국가권력과 자본이 비무장지대에 개발의 논리를 들이대려는 것들에 반대할 뿐만 아니라 통일 이후 새롭게 다가올 선택의 문제들에 관해서도 예지를 펼쳤다. 이반의 예술세계는 분단체제를 살면서 통일을 준비하는 현재와 통일을 맞이해 문화적 융화과정을 거칠 미래 전반에 걸친 유의미한 사회적 언술이자 예술적 실천이다.
이반은 ‘한라백두수토통합통혼제’(1990년)에서 제례의 형식을 빌려서 남북의 상징인 한라산과 백두산의 흙과 물을 섞었다. 그는 백두산과 한라산을 오갔고, 비무장지대를 주제로 한 작업전을 한 해씩 걸러 네 차례에 걸쳐 열었고, 그 결과를 묶은 <비무장지대의 과거·현재·미래>를 편찬했다.
이반은 분단의 현실을 예술로 관통하면서 실재와 예술을 하나로 엮었다. 2012년에는 그의 작품 ‘도라산역 벽화’가 일방적으로 철거당하고, 이에 저작인격권 침해 논란이 일었다. 이반의 탈분단예술은 현재 진행형이다.
■ 최평곤, ‘통일 부르기’
분단 현장에 우뚝 선 통일의 상징
거대한 크기로 우뚝 선 대나무 인간. 최평곤은 대나무를 엮어서 만드는 입체구조물로 다양한 인체를 표현해왔다. 자연과 인공, 생태와 문명을 넘나드는 명상적 메시지를 던지는 그의 작품은 불굴의 주먹을 움켜쥐고 우뚝 선 거인이었으며, 바다에서 걸어 나오는 생명의 모태이자 파랑새를 안은 따뜻한 인간이었고, 대지와 마을을 지키는 거대한 문인상과 무인상이었다. 자연공간 속에서 인간과 인간이 만든 인공물들은 보잘것없거나 거추장스럽기 십상이지만, 최평곤의 대나무 인간 연작들은 예외적으로 도드라져 보이면서도 그 장소의 맥락을 잘 타고 넘나든다.
분단의 상징인 파주 임진각의 야트막한 잔디 언덕에는 거대한 인간 형상의 구조물들이 북쪽을 바라보고 줄지어 서 있다. 최평곤의 대나무 인간 연작, ‘통일 부르기’다. 이 작품은 각각 10m, 7m, 5m, 3m에 달하는 인간 형상의 구조물 4개로 이뤄졌다. 2007년 제작한 작품은 1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면서 통일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졌다. 최평곤은 대나무를 쪼개어 만든 유연한 선재를 이용해 거대한 구조물을 만든다. 대나무 특유의 유연성을 이용한 그의 독특한 기법은 선과 면, 여백과 형상의 맛을 융합해 조형예술의 묘미를 느끼게 한다. 경기문화재단이 운영했던 임진각 평화누리는 공연과 전시가 이뤄지는 관광명소다. 주차장을 사이에 두고 왼쪽에 임진각, 오른쪽에 평화누리가 있다. 이른바 안보관광 차원의 내국인들과 한반도 분단의 현실을 체험하려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최평곤의 작품은 임진각을 찾는 관광객들의 동선을 바꿀 정도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애초 1년 예정이었던 전시를 2년 연장하고, 이후 경기관광공사가 이를 구입해 영구 소장품으로 남아 있다. 장기 보존을 위해 금속재료 사용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대나무 특유의 맛이 줄어 아쉽지만 분단의 현장에서 통일을 노래하는 상징을 지키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윤수연의 ‘적과영웅(a.k.a 맥아더)’.
■ 윤수연, ‘불완전한 여행’
과거와 미래로 이어지는 기억투쟁
윤수연은 사회적 폭력에 노출된 개인의 모습을 담는 예술가다. 그는 전쟁과 갈등, 분단과 억압, 상처와 기억 등의 문제를 다룬다. 그는 종교와 민족의 분쟁으로 갈등을 겪고 있는 중동지역의 전쟁난민을 담은 ‘New Haeven, No Haeven’ 연작(2003)을 했으며, 이후 남한 내의 탈북난민을 다룬 ‘Incomplete Journey’ 연작(2003~2006)과 미국의 참전 군인을 다룬 ‘Homecoming’ 연작(2006~2008) 등 다큐멘터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는 주어진 현장에서 사건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작가 스스로 조직한 사유와 성찰의 맥락을 좇아 지난한 수행의 과정을 거치는 현장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Incomplete Journey’ 연작은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말 그대로 ‘불완전한 여행’을 하고 있는 새터민들 이야기다. 이들의 삶은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겪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삶은 새 삶을 찾아 적응하고 관계를 맺는 과정의 연속이다. 이 과정에서 윤수연은 탈북자들의 삶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 배경에 존재하는 한국 사회의 구조도 보여준다. 윤수연의 다큐멘터리 안에는 남한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 대다수가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사회 구조의 문제가 들어 있다. 그것은 한국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회적 문맥으로서의 분단과 한국전쟁의 문제로 확장한다.
윤수연은 남한과 북한으로 갈라진 코리아의 분단 현실을 비무장지대 풍경이나 역사적 장면과 상황의 재현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그는 분단과 전쟁이 남긴 후과들, 특히 북한으로부터의 탈출과 남한으로의 망명에 이어 그들이 대면하는 새로운 상황과 장면들에 관심을 가짐으로써 새로운 방식의 기억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그것은 과거를 향한 기억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기억이다. 현재 벌어지는 일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함으로써 과거와 미래를 잇는 스마트한 기억투쟁이다